후쿠모리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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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쿠모리 가즈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큐슈 지역 유망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9승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2006년에는 21세이브를 올리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07년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지만 부진했고, 2009년 라쿠텐으로 복귀했지만, 2010년 부상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사업가로 변신하여 회사 경영에 참여했으며, 현재는 텔레비전 미야자키에서 기자, 디렉터,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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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모리 가즈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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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후쿠모리 가즈오 |
로마자 표기 | Kazuo Fukumori |
출생일 | 1976년 8월 4일 |
출생지 | 미야자키현 기타모로카타군 다카자키 정 (현재: 미야자키현미야코노조시) |
신장 | 182cm |
체중 | 82kg |
포지션 | 투수 (릴리프 투수) |
투구 | 우투 |
타석 | 우타 |
선수 경력 | |
고등학교 | 미야코노조 고등학교 |
프로 입단 | 1994년 드래프트 3위 |
소속 팀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95-2003)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200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2007, 2009-2010) 텍사스 레인저스 (2008) |
NPB 경력 | |
데뷔 | 1995년 10월 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
최종 경기 | 2010년 3월 27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MLB 경력 | |
데뷔 | 2008년 3월 31일, 텍사스 레인저스 |
최종 경기 | 2008년 4월 24일, 텍사스 레인저스 |
승-패 | 0승 0패 |
평균 자책점 | 20.25 |
탈삼진 | 1 |
기타 정보 | |
가족 관계 | 아들 창성관 고등학교 투수 고시엔 출전 |
2. 선수 경력
후쿠모리는 미야코노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지명되어 입단했다.[4] 프로 3년 차인 1997년 7월 3일 주니치 드래곤스를 상대로 첫 승을 기록했다.[30] 선수 생활 초기에는 팀의 5, 6선발로 활약했으며, 1999년에는 개인 최고 기록인 9승을 올렸다.
2003년 시즌 후 가도쿠라 겐, 우다카 신지와의 맞트레이드로 야노 에이지와 함께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로 이적했다.[30] 2004년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2승 10세이브를 기록했지만, 팀은 오프 시즌에 해체되었다. 이후 분배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 창단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했다.
2005년 4월 1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팀 역사상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1] 2006년에는 고야마 신이치로의 부진으로 마무리 투수를 맡아 전반기에 26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시즌 후반에는 부진으로 중간 계투로 강등되기도 했지만, 9월 22일 세이부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다시 마무리로 복귀, 최종 2.17 ERA와 21세이브로 개인 최고 성적을 올렸다.
2007년에도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으나, 6월 교류전에서 부진했고,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시즌 후반을 재활에 전념했다. 시즌 후 FA를 선언하고 메이저 리그 진출을 시도했다.
2007년 12월 13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2년 300만달러 계약을 체결했다.[1] 2008년 3월 31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지만 부진하여 5월 11일 방출되었다.
2009년 6월, 일본 복귀를 희망하여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방출되었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복귀했다.[23] 복귀 후 구원 투수로 7승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18을 기록하며 팀의 정규 시즌 2위에 기여했다. 2010년에는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24]
2. 1. 프로 입단 전
미야코노조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3년 연속 미야자키현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4] 3학년 때 결승전 상대는 노베오카가쿠엔 고등학교였으며, 당시 상대팀 주축 타자는 구사노 다이스케였다.1994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4] 요코하마는 당초 기타 아키카즈를 1순위로 지명하려 했으나, 실패할 경우 후쿠모리를 1순위로 지명할 예정이었다.[4]
2. 2.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프로 3년 차인 1997년 7월 3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30] 1999년에는 개인 최고 성적인 9승을 기록했다. 4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선발 사이토 다카시가 3개의 홈런을 허용하며 강판되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동안 3안타 2탈삼진 1실점으로 막아냈다. 이후 4월 15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 4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각각 2승과 3승을 거두었다. 5월 2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시즌 첫 선발로 나서 12탈삼진 무사사구 2실점으로 프로 첫 완투승을 기록하며 리그 1위에 올랐다. 최종 성적은 9승 9패였다.2001년 등록명을 ‘和男|가즈오일본어’에서 ‘'''福盛 一夫|후쿠모리 가즈오일본어'''’로 변경했다가,[30] 2003년에 다시 ‘和男|가즈오일본어’로 변경했다.[30] 2003년에는 개인 최고 기록인 62경기에 출전했다.
2. 3.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시절
2003년 시즌 후 가도쿠라 겐, 우다카 신지와의 맞트레이드로 야노 에이지와 함께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로 이적했다.[30] 2004년 1월, 후지 TV 아나운서(당시)인 후쿠모토 하나에와 결혼했다. 2004년 시즌 도중부터 구원 투수로 지명되었지만, 불안정한 투구로 인해 완벽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30] 그해 2승 10세이브를 기록하며 5.18 ERA를 기록했다.2. 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05년에는 구원 투수를 담당했고 같은 해 4월 1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정규 경기 세이브를 기록했다.[1]이듬해 2006년, 고야마 신이치로의 부진으로 시즌 도중부터 구원 투수를 맡아 전반기에는 2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호투를 보였고,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2] 그러나 시즌 후반기에 컨디션이 떨어져 세이브 달성에 실패하면서 중간 계투로 격하되었다.[2] 9월 22일 세이부전에서는 8, 9회를 무실점으로 막아 팀의 1대 0 승리를 이끌며 오랜만에 세이브를 달성했고,[2] 이후 2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부활, 최종 평균자책점 2.17과 21세이브로 개인 최다 성적을 올렸다.[2] 시즌 종료 후에는 정규 시즌 도중 발병한 편도선염 증세가 악화되어 편도 제거 수술을 받았다.[2]
2007년에는 구원 투수로서 4·5월에는 팀의 호조를 이끌었지만, 6월부터 불안정한 투구가 이어지며 교류전에서 구원 실패가 잇따랐다.[3] 이후 유리연골 제거 수술과 재활훈련으로 후반기 시작과 함께 팀에서 이탈했고,[3] 같은 해 11월 7일 해외 이적을 위한 FA를 선언, 11월 13일자로 공시되었다.[3]
2. 5.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007년 11월 7일 해외 이적과 관련한 FA를 선언하고, 11월 13일자로 공시되었다.[1] 12월 13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2년간 300만달러 계약에 합의했고,[1] 다음 날 홈구장인 레인저스 볼파크에서 입단 회견을 열었다.2008년 3월 31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완수했지만, 1/3이닝 2안타 2볼넷 3실점으로 부진했다. 4월 13일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었고, 이후 다시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여 1경기에 등판했지만, 재차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었다. 결국 5월 11일 메이저 리그 계약이 해제되었다.[1] 같은 해 후반기부터 요통에 시달렸고, 10월에는 추간판 탈출증 수술을 받았다.
2009년 부상자 명단에 들어간 상태에서 마이너 리그 스프링 캠프를 맞이했다. 같은 해 6월, 후쿠모리는 일본 복귀를 희망했고, 레인저스는 이를 승낙하여 방출했다. 메이저 리그 통산 성적은 4경기 등판, 0승 0패, 평균자책점 20.25이다.
2. 6. 라쿠텐 복귀와 은퇴
2009년 6월 19일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며 2년 만에 라쿠텐으로 복귀했다. 노무라 가쓰야 감독은 후쿠모리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것을 이유로 영입에 소극적이었지만, 후쿠모리가 직접 노무라 감독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23] 복귀 후 구원 투수로서 7승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18, 득점 지원률 6.68을 기록하며 팀의 정규 시즌 2위에 기여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 스테이지에서는 터멜 슬레지에게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는 등 부진했다. 2010년에는 부진과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9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24]3. 은퇴 이후
은퇴 후 잠시 숙부가 경영하는 휴대전화 판매 및 수리 회사에서 이사를 맡았으며[23], 2011년에는 마스터스 갑자원 2011에 미야코노조 고등학교 OB팀으로 출전했다. 현 예선 결승에서는 홈런을 치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24]. 그 후, 해충 구제 회사를 거쳐 미야자키로 귀향했다. 2014년 10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미야자키 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후쿠모리 가즈오의 목표! 선수》를 담당했다. 2015년부터 텔레비전 미야자키의 보도 스태프로 근무(계약 사원 취급)하며 구성, 기자, 디렉터도 겸하는 보도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25].
4. 플레이 스타일
주로 던지는 구종은 스트레이트, 슬라이더, 슈트, 포크볼, 너클 커브이다. 직구 구속은 140km/h 중후반(최고 속도 149km/h)이며, 스트레이트에 육박하는 구속의 고속 슈트와 변화량이 큰 포크를 주 무기로 사용한다. 일본인 투수로서는 드물게 너클 커브를 사용하기도 한다. 볼은 다소 거친 경향이 있어 폭투도 약간 많은 편이다. 타자 심리를 읽고, 칠 기세의 상황에서 미묘하게 공을 변화시키는 스타일이 특징이다.[26][27]
5. 개인 기록
첫 선발 승리